지하철역
우리의 일상 속에서 지하철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교통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르다. 지하철 차량, 지하철역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보이는 경치까지 나에게는 소중하고 아름답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을 한 번 이상씩 지나쳐 가봤지만 나에게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지하철역이 하나 있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그 역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어느 날, 안산에 있는 친구 집에 가기 위해 수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나는 1호선이 좋다. 물론 항상 붐비는 것이 1호선이지만 바깥 경치를 가장 많이 구경할 수 있는 것이 1호선이다. 금정역에 오니 안산행 열차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수원행 열차는 떠나가고 내가 타고 있는 열차는 또 다른 세계로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철로 옆에 농사를 짓고 있었다. 수도권 지하철 중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는 줄 몰랐었다.
그러다가 지하철을 반월역에서 멈추었다. 역에 멈추어 있던 것은 10초도 안되었지만 그때 보이는 경치는 너무나... 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산이 일렬로 오르락내리락... 다 같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하철은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었다.. 반월역 뒤로 터널이 있는데 터널을 지나가면서 안산 시내로 들어가면서 아까의 분위기는 다 사라졌다. 주위에는 모두 아파트 밖에 없었다. 지하철역도 새깔이 진한 현대식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친구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반월역에서 잠깐 내리기로 했다. 아까 터널을 지나서 승강장에 내렸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바로 밑에서는 밭이 있었고, 아담한 집이 한두 개씩 떨어져 있었다. 집 앞에 있는 하얀 아스팔트 길이 고불고불 산 넘어 이어지고, 산은 소나무로 가득하고 그 옆에도 산, 옆에도 산... 그리고 그위에는 빨간 노을이 지고, 그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뒤를 보았다. 오른쪽 구석에 아파트 두 개가 서 있었다. 그쪽 아래에 마을이 있었나 보다. 앞에 있는 풍경은 고요하기만 했다. 반월역을 보는 순간, 시골에 있는 기차역이 생각난다. 다른 지하철역과 달리 승강장이 2개 있었고, 역 건물은 따로 작은 건물이 있었고 그 사이는 지하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시골 마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그만큼 혼자의 명상에 빠지기 좋았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내려갔고 산과 하늘을 둘 다 어둡지만 구분은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산의 실루엣만 살짝 보니까 아까랑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아까는 안 보였지만 산 사이에 고속도로가 있었다. 산중 간에 자동차 불이 빨리빨리 지나가는 걸 보니, 무슨 레이저 쇼를 보는 것 같이 화려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제는 집에 가야 했다. 지하철이 터널을 지나오면서 터널 전체를 비춰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뒤를 돌아보니 색은 달랐지만 형체는 똑같았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지하철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발하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씩 반월역을 지나가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