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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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명상

밀소남 2022. 7. 19. 12:50

숲에 대한 명상

숲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지금에 와서 숲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산소 공급과 녹지 조성 이외에도 세계의 기후를 적절히 조절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보는 숲의 과학적인 이로움이지 그 외 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이거 때문에 우리가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파괴되는 숲을 대신하여야만 할 미래에 대체품들이 속속 발명된다면, 숲은 지구의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는 제거 해야만 할 장애물이 되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제거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숲은 과학적 용도 외에도 우리 인간에 지대한 정서적 영향을 주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역할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늘어나고, 결국에 숲이 이루어지면 그 숲에는 야생동물이 모여들고 그다음에는 우리 인간들이 필요한 것 나무 자체뿐만 아니라 숲과 그 속에 살아있는 것들이 주는 기쁨을 가지고 가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고 그렇게 지구라는 행성을 이룬다.

산업화 과정에서 숲의 이용가치만이 유난히 부각되어 나무는 쓰러지고 숲은 사라졌다. 또 그만큼 우리 지구의 푸른빛도 사라졌다. 사라진 숲에 비례해서 우리들의 산업은 첨단화되었고, 문명 발달의 극에 달하면서 숲의 이용은 더 얻기 쉽고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고로 숲의 이용가치가 서서히 내려가고 그에 상반하여 정서적인 효과가 부각되었다.

숲은 이용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호하고 또 보호받는 동반자라는 것이다. 숲은 안정적이다. 시각적으로는 안정된 녹색, 붉은색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일단 우리는 시각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에 숲에서 안정을 취한다. 산소의 공급은 과학적 이용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몸 안에 쌓인 오염 물질들을 숲에다가 쏟아내는 그것이 물론 숲에는 오염물질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은 이기적이다. 어쩌면 그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숲의 일부분을 담아오는지도 모른다. 숲은 이렇게 의지하고 그의 일부분을 얻으려 오는 우리에게 그를 담아준다.

숲은 생각의 기회를 준다. 나무는 하늘로 그를 키운다. 그리고 넓게 더 넓게 하늘로 펴 나간다. 넓게 하늘로 펴 나간 양을 보면서 어쩐지 위대함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로 펴 나간 모양, 큰 가지에 작은 가지 여러 개를 그리고 그 작은 가지 하나에 또 더 작은 가지 여러 개 그리고 그 위에 매달린 두리뭉실한 파아란 잎새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작게 핀 여러 개의 참신한 또는 푸르른 생각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역시 그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

숲은 변한다. 매일 매년 그리고 몇 천년 몇만 년을 두고 서서히 때로는 급속하게 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달의 변화는 급속하나 몇 만년을 두고 하는 변화는 느리다. 몇 만년이 되어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킨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제가 붙는다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숲은 서로 어울린다. 숲끼리 뿐만 아니라 그 속의 어떠한 생명체들과도 어울린다. 숲은 그만큼 유연하다. 첨단화 산업화 속에서 획일화되고 삭막해져서 저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인간들은 서로 어울리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마저 갖고 있으며, 각자를 자기만의 방에 가두어 놓았다. 삭막해진 현실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숲은 푸르름 속에 그 무엇을 보여주고 인간에게 그 무엇을 찾게끔 하는지도 모른다.

숲의 푸르름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은 단지 하나의 언어 단위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숲 속이 아닐지도 모른다. 흔히 보이는 나무마다 있을 수도 있는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